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홍콩 영화 (문단 편집) == 한국에서의 영향 == 홍콩 영화는 한국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과 홍콩의 첫 합작 영화인 [[1957년]]작 《이국정원》을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한국-홍콩 합작 영화들이 [[무협]]물을 중심으로 많이 제작되었다. 이렇게 합작을 하면 한국 입장에서는 당대의 깐깐했던 외화 상영 제한 규제를 피할 수 있었고, 홍콩 입장에서는 홍콩 땅이 좁아서 영화 촬영지를 찾기 어렵다는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촬영지가 문제라면 땅이 넓은 중국 본토에서 찍어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중국 본토는 [[죽의 장막]]으로 대표되는 [[쇄국]] 정책을 펼치고 있어서 영화 촬영은커녕 입국도 쉽지 않았다. 특히 [[무협 영화]]와 [[중국권법|쿵푸]] 영화의 비중이 큰 홍콩 영화 특성상 옛날 건축물이 자주 등장할 필요가 있는데, 한국의 전통 가옥들의 양식이 중국 고건축과 비슷했기 때문에 딱 적당했다. 물론 차선책으로는 일본이나 대만도 있었지만, 일본은 비용과 규제가 걸림돌인데다 건축 양식이 중국과 너무 달랐고 대만은 촬영지의 다양성이 적었기 때문에 한국을 가장 선호하였다. [[성룡]]이 한국어를 할 줄 알고 [[육개장]]을 좋아한다거나 하는 것도 소싯적에 한국에서 홍콩 영화를 많이 찍었기 때문이다. 무명 시절에도 한국에 오래 거주하며 영화를 촬영했고,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었으나 현재는 많이 잊어버렸다고 한다. 또한 [[이소룡]] 최후의 작품인 [[사망유희]]도 원래는 [[법주사]]에서 찍을 예정이었을 정도이니 말 다한 셈. 이렇게 상당한 기간 동안 합작 영화를 찍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은 영화 기법에서 상대적으로 더 선진적이었던 홍콩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당대에 촬영된 한국 영화들을 보면 홍콩 영화의 영향이 짙게 느껴지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특히 액션 영화가 그런 경향이 강하다. 무협 영화를 찍던 제작 인력들이 1990년대에 돈벌이용으로 [[어린이 영화]] 제작에 많이 참여했기 때문에 뜬금없이 어린이 영화에서도 홍콩 영화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1980년대 이후로 한국-홍콩 간 합작영화가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초반까지는 [[주윤발]], [[장국영]], [[왕조현]] 등 홍콩 영화배우들이 한국에서 광고를 찍을 정도로 홍콩 영화가 한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더불어 지상파 TV에서도 꽤나 오랜 기간 동안 홍콩 영화를 명절에 틀어 주었기 때문에 영향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그래서 홍콩 영화의 인기가 줄어든 [[2000년대]] 초반 이후로도 홍콩 영화의 영향이 한국 영화계에 여전히 남아 있어서 범죄, 액션, 무협 장르에서 그 특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